대행선사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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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자성불(自性佛)을 모시고 있다.
어찌 솟아날 구멍이 없다고 하겠는가.

대행선사 생애

대행선사 생애

스님은 법명이 대행大行이고 법호는 묘공妙空이며, 속성은 노 씨이고,
본관은 교하交河로써, 1927년(丁卯年) 부친 노공 백천佰天과 모친 백씨
간난의 삼남 이녀 중 장녀로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망국의 퇴역 무관으로서 폭거에 감연히 항거하던 부친이 요시찰인물로 지목되면서 일제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맨몸으로 거리로 쫓겨난 스님 일가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산마루턱에 움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산속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스님은, 골짜기 곳곳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헐벗은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참상을 보고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가져다 주는 상상想像 속의 보시布施를 하며, 만유의 차별상과 존재에 대한 큰 의정疑情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 스님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집중하게 되었고, 돌에서 꽃을 피우듯 본연의 심지心地 에서 첫 소식을 밝혔으니, 그때 스님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스님은 14세 때 한암(漢巖, 1876~1951) 큰스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24세 때인 1950년 청각靑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 그로부터 십여 년, 자성이 이끄는 데로 산천초목을 스승 삼아 유무有無를 뛰어넘는 무애無礙의 수행으로 마침내 진여 眞如의 관문을 꿰뚫으니, 이전 이후 없는 한 점의 동곳이 천지 만물을 꿰어 든 도리였다. 이후 스님은 1960년, 치악산 상원사 아래의 토굴에 이르러 바랑을 내려놓고 중생 제도의 뜻을 펴기 시작하였다.
  • 스님은 사생四生을 다 먹이고도 도리어 남는 보물을 제 속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본래 구족된 진여眞如 자성自性, 한마음 주인공主人空을 일깨워 주고자 큰 뜻을 일으켜 1964 년 하산하여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였다.
  • 1972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한마음선원을 건립한 이후 스님의 가르침은 불처럼 번져 나가 국내외 수십 곳에 지원이 건립되었고, 그 가르침으로 인해 각자의 참 스승인 본래면목을 깨달아 자신과 세상을 함께 밝히고자 공부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로부터 40여 년, 스님은
자신의 근본을 밝히는 생활선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천리만리를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뜻으로써 일러주고 실천으로 맛보게 하는 등 중생을 교화하다가
2012년(壬辰年) 음력 4월 초하루 입적入寂하시니
세수世壽 86세, 법랍法臘 63세였다.


2021년 현재 150여 명의 비구니 제자·비구 법제자들이 재가불자들과 더불어
한마음선원 안양 본원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25개 지원에서 포교와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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